31절은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 지역을 지나서 다시 갈릴리 호수로 돌아오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렇게 주님의 행선지를 굳이 언급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치유하심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이 시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치유하심, 구원의 역사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세상누구에게나 이 시간 우리에게도, 나에게도 차별 없이 임하시고, 역사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이렇게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차별없이 찾아오셔서 만지시고 고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 앞에 사람들이 한 사람을 데리고 나오면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호기심 반, 믿음 반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제가 이들이 왜 호기심 반으로 데리고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33절을 나눌 때 말씀드리기로 하고,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는 우리가 무슨 어려움을 가지고있든, 어떤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있든, 믿음이있든,믿음이 없든 주님앞에 나와야 소망이 있고, 주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는 우리를,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생명을 주신 주님 앞에 나올 때 소망이 있고, 치유가 있고, 주님 앞에 나올 때 온전한 회복이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줄믿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치유방법은 3단계인데, 예수님은 가장 먼저 33절에 환자를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 다른 사람들과 떼어 놓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사람들에게서 분리하여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셨을까요? 여기에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제가 앞에서 이 사람을 데리고 온 사람이 믿음 반, 호기심 반이라고 단정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의사도 못 고치는 환자를 목수의 아들이 고친다고? 그것도 무슨 특별한 약이나 의술이 아니라 기도해서 고친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불신으로 모인 사람과 혹시...모르지...일단 구경이나 해보자...호기심으로 오는 사람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를 아예차단하기 위해서 그를 따로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의 사역에서 나타난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도시에서는 아무 일도 행치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능력도 행하실 수 없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6:5~6절과 마태복음 13:58절을 함께 읽습니다. "거기서는 아무 능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그들의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고향인 나사렛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지만, 사람들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이라 무시하며 전혀 믿지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는 많은 능력을 행치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을 꼭 고쳐주시기 위해서 그를 무리에서 분리하여 따로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부정적인 원인, 사탄의 방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치유를 위해 기도할 때, 또 기도를 받을 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을 먼저 완전히 제거하시고, 100%의지 하는 마음, 반드시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확신하고 기도하시고, 또 기도 받으시고, 그 믿음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치유 2번째 단계로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볼 때 이것은 참 이해하기 힘든 행동입니다. 주님은 왜 이런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셨을까요? 그냥 말씀만 하시면 되는 능력을 가지신 분인데 왜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