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31~35 ‘믿음의 행위와 권세 있는 명령’ (윤정근 목사 1,2부 설교) 어느 집에서 갓난아기가 말을 하기 시작하니까...그 말하는 것이 너무 예뻐서 온 가족이 모여서 “애야 말해봐... 내가 누구야?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가 묻자? 아이가 “할미”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아이고 예뻐! 잘했어!” 박수를 치며 칭찬하자 이번에는 할머니가 옆에 할아버지를 가르키며 “이 사람은 누구야?” 그러자 아이가 잠깐 망설이더니 “왠수.” 할머니가 맨날 아이고 왠수, 저 왠수...그러니까 아이가 듣고 듣던 대로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은 들은 대로 배우고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엄마 아빠가 자기 엄마인 것을 어떻게 압니까? 이 사람이 누굴까? 깊이 연구하고 공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내가 너를 낳아준 엄마야, 이 사람이 아빠야, 말해주니까 듣고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듣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영적인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 줄 어떻게 압니까? 성경이 말해주고, 전도자가 말해주고, 설교자가 말해주니까 듣고 아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의 영의 귀가 활짝 열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반드시 너를 고쳐 주리라. 온전히 회복되리라. 기도하고 있는 그 문제는 해결되리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우리인생은 듣는 것이 중요하기에 모든 교육의 시작도 암기가 아니라 듣기에서 시작됩니다. 듣는 귀가 열려야 입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난 주 9시뉴스에서 강남에 유아들이 기저귀를 차고 한 달에 190만원하는 영어학원에 다닌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왜 강남의 엄마들이 기저귀를 찬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보낼까요? 많이 듣게 해서 귀를 열어주면 입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했는데 언어학자들이 주장하는 것 중에 ‘9천 시간의 원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언어를 말할 수 있기까지는 9천 시간을 들어야 귀가 열리고, 자연히 입도 열린다는 원리입니다. 들을 수 있어야 지식이 습득되고, 그 얻어진 지식을 기반으로 입도 열리고, 대화가 가능하여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 갈 수 있기에 모든 것이 듣기에서 시작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우리의 믿음도 어디서 나온다고요? 들음에서 난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이렇게 듣는 것, 우리의 귀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 귀가 들리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지난 주 목요일 은퇴하신 원로목사님과 식사하고, 원목실에 와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최근에 귀가 잘 안 들리게 되니까 인생이 재미가 없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상대방과 대화를 해도, 상대방의 말을 듣지 못하면 아무리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뭐가 그리 좋겠습니까? 답답하여 스트레스 받고, 거기에서 무력감도 오고, 우울증도 오고, 치매라는 몸쓸 병도 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듣지 못하는 자의 이런 고통을 아셨기에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보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 ‘스테나조’ 심히 괴로워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이제 본문말씀을 나눌 때 귀먹고 어눌한 자를 보시고 심히 괴로워 눈물 흘리시는 주님의 사랑을 우리 모두가 느끼며 이시간 내 연약함을 보시고 성령으로 탄식하시는 주님사랑으로 큰 위로를 받으시고, 말씀에 귀가 열리고, 십자가사랑에 눈이 열리는 귀한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치시는 특별한 치유 방법이 나옵니다. 공생애 기간 행하신 예수님의 치유방법을 보면 환자에게 직접 손을 대어 안수하시거나 말씀으로 명하여 고치시는데 본문에 치유하시는 방법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의학적인 상식으로 볼 때 이해하기 힘든 방법인데 거기에 어떤 영적인 교훈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